김우명(金佑明)의 자는 이정(以定)이요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영의정을 지낸 잠곡 김육의 두째아들로 1619년(광해 11)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에서 태어났다.어려서부터 용모가 단정하고 후덕한 성품을 지닌 관계로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1642년(인조 20) 2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강릉참봉이 되고 이듬해에는 익위사 세마(翊衛司 洗馬)가 되였다.그 후 공조좌랑·정랑·掌樂院 僉正·부평부사·예빈사정·제용감정등의 관직을 맡아 수행했는데 1660년(현종 1) 현종대왕이 왕세자로 있을 때 자신의 딸을 빈으로 맞아드린 연유로 그는 국구로서 청풍 부원군으로 봉해지고 영돈령부사가 되였다.그는 소년시절 아버지가 왕손을 호종하며 중국 심양에 다녀올 때 아버지가 80의 노구임을 슬퍼하며 항상 말고비를 놓지않고 극진히 봉양하고 밤낮으로그 곁을 떠나지 않는 지극한 효성을 다해 주위를 감 동시켰다고 한다.한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같은 서인의 송시열과 대립하여 왕실세력을 배경으로 하는 한당의 중진 이 되었다. 1675년(숙종 1) 56세에 별세하여 처음에는 양주땅에 묘를 썼다가 강원도 춘천시 안보리 옛 안보역촌 뒤로 옮겼다. 현재 그의 묘하에는 그가 죽은 후 장사 지낼 때 쓴 상여가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