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상(李嘉相)의 자는 회경(會卿)이고, 호는 빙헌(氷軒)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월사 이정귀의 손자이자 현주 이명한의 차남으로 1615년(광해 7) 8월 15일에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때부터 어진 성품을 지녔으며 자라면서 더욱 예의가 밝았다고 한다.
1630년(인조 8) 16세에 진사가 되니 주위 사람들이 그의 명석한 정신을 크게 찬양하였다.
163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병자호란이 일어나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란을 떠났다. 그러나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또다시 피란중에 적에게 어머니를 숨기고 그는 체포되었다.
부인 안정나씨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외딴 섬으로 피신했는데 그는 얼마만에 풀려나와 그 사실도 모 른 채 어머니의 행방을 찾아 적진을 헤매다가 적에게 붙잡혀 살해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내도 상심끝에 세상을 떴는데 인조대왕이 보고를 접하고 효자의 정문(旌門)을 내렸다.
현종때에 이르러 특명으로 자헌대부 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으로 추증하였다.
묘는 가평군 상면 태봉리에 부인과 함께 있다.